CU 물류 사망사고 (하청구조, 노란봉투법, 사용자성)
장관이 건 것은 '직'이었고, 노동자가 건 것은 '목숨'이었습니다. 올해 1분기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113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온 바로 그 시점에, 경남 진주의 CU 물류센터 앞에서는 화물노동자 한 명이 싸늘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숫자가 개선될수록 현장은 나아진다고 믿었던 저로서는, 이 두 사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하청구조라는 이름의 책임 사다리
편의점 CU의 물류 체계는 시스템 공학적으로 보면 꽤 정교합니다. 수천 개의 점포에 신선식품을 24시간 끊김 없이 공급하려면 그만큼 촘촘한 구조가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BGF리테일 → BGF로지스 → 물류센터 → 운송사 → 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multi-tier subcontracting)가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다단계 하청구조란 원청 기업이 업무를 1차, 2차, 3차 이상으로 나눠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위험과 비용이 계단 아래로 전가될수록 실제 일하는 사람의 협상력은 0에 수렴하는 구조입니다.
화물연대는 올해 1월부터 BGF 측에 일곱 차례나 교섭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이 숫자에서 멈췄습니다. 일곱 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일곱 번 거절당하면서도 계속 테이블 앞에 서려 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배송 체계 개선과 운임 단가 인상, 즉 생존의 최소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BGF는 대화 대신 2.5톤 대체 화물차를 현장에 투입했고, 이를 막아선 노동자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운송 적자를 감내하면서 주 70시간 이상 일했다는 대목은 제가 분석해온 물류 데이터와 정확히 겹칩니다. 고도화된 물류 시스템의 '가동률'을 유지하는 비용이, 시스템 맨 아래에 있는 사람의 몸과 시간으로 충당되고 있는 셈입니다. 물류가 멈추자 CU 점주들이 본사에 항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BGF의 실질적 지배력을 증명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권력 관계가, 위기 상황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노란봉투법과 '사용자성' 공방의 진짜 의미
이번 사건에서 BGF가 꺼낸 첫 번째 카드는 '사용자성(employer status) 부정'이었습니다. 사용자성이란 노동관계법상 사용자로 인정받는 지위를 말하는데, 쉽게 말해 "나는 이 사람들의 고용주가 아니니 교섭 의무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BGF는 이 논리를 내세워 화물연대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BGF가 노동자 사망 이후에는 교섭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사용자가 아니라면 왜 교섭에 나왔을까요? 더 기이한 건, 교섭에 응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점입니다. 사용자인 것처럼 교섭하면서, 사용자가 아닌 것처럼 법적 책임은 피하려 한 것입니다. 이 태도는 단순한 법적 다툼이 아니라, 수익 구조와 책임 구조를 의도적으로 분리하려는 '윤리적 파산'에 가깝다고 저는 봅니다.
노란봉투법, 즉 개정 노동조합법은 지난달 10일 시행됐습니다. 이 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이 교섭 의무를 지게끔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일부에서는 이 법 때문에 노동자들이 무리한 교섭을 요구해 사태가 커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주장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이 생겨서 요구가 생긴 게 아니라,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정부 대응이 어떻게 흔들렸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처음에 이번 사건이 "노란봉투법 적용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사흘 뒤 김영훈 장관 스스로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다단계 구조에 있다"며 말을 뒤집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 할 것을, 법 해석의 모호함 뒤에 숨었다가 여론의 압박을 받고 나서야 번복한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패턴은 통계 수치 관리에 익숙한 조직이 현장 갈등 구조를 마주할 때 자주 보이는 반응입니다.
수치가 아닌 구조를 바꿔야 하는 이유
올해 1분기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11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명 줄었다는 통계는 분명 의미 있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 수치가 정확히 무엇을 개선한 결과인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산업재해 통계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재해로 분류된 사고를 기반으로 산출됩니다(출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다단계 하청 구조의 말단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법적 분류와 집계 방식에 따라 통계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CU 물류 사태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원청인 BGF리테일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사용자성을 부정해 교섭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 화물노동자는 운송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주 70시간 이상의 초과 노동을 강요받는 구조에 놓여 있었습니다.
- 정부는 법 해석의 모호함을 이유로 초기 대응을 지연했고,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 노란봉투법이 시행됐음에도 기업이 이를 교섭 거부의 방패로 사용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독립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구조에서 파생된 연쇄 결과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Serious Accidents Punishment Act)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 의무를 강화한 법으로, 원래 이런 구조적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설계됐습니다. 그러나 법이 있다고 구조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자가 책임을 지는 '상식의 법치'가 실제로 작동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류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시스템의 정교함에 감탄했던 저로서는, 그 정교함이 특정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습니다. 가동률 99.9%의 편의점 물류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면에, 법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직을 건 장관과 목숨을 건 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단순히 신분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스템이 누구의 생존을 보호하고 누구의 생존을 방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중대재해 수치가 줄어드는 동안 다단계 하청 구조의 말단에서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면, 우리가 개선하고 있는 건 통계이지 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BGF와의 교섭 내용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그리고 정부가 사용자성 판단 기준을 어떻게 재정립하는지를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이 변하지 않는 한, 혈담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600270000131?dtypecode=pancode_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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