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쓰나미 (공급과잉, 에너지전환, 탄소비용)
분리수거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기차도 늘고, 태양광 패널도 늘었는데 왜 쓰레기통 속 플라스틱은 줄어드는 기색이 없을까요. 재생에너지로 전환할수록 오히려 석유가 플라스틱 원료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다는 경고를 접하고 나서야, 제가 느끼던 그 불편한 감각에 이름이 생겼습니다.
재생에너지가 플라스틱을 늘린다는 역설, 실감하셨나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기차를 타고 태양광 전기를 쓰면 석유 소비가 줄어드니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연료용 석유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산유국과 석유 기업들은 그 물량을 플라스틱 원료 쪽으로 돌리는 방향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핵심에 COTC(Crude Oil to Chemicals) 공정이 있습니다. COTC란 원유에서 나프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에틸렌 같은 석유화학 제품을 뽑아내는 고효율 공정을 뜻합니다. 기존 방식보다 석유화학 제품 생산 비율이 높고, 가격도 최소 30% 이상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2020년대 이후 중동 지역에서 새로 짓는 설비 대부분이 이 방식입니다.
에틸렌(Ethylene)은 폴리에틸렌, PVC 등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플라스틱의 핵심 원료입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에틸렌 생산 설비 용량은 연간 약 2억 4,000만 톤으로 추정되는데, 2030년까지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4,500만 톤 규모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럽·한국·일본의 경쟁력 약한 설비가 일부 문을 닫더라도, 4,000만~6,000만 톤 수준의 공급 과잉(Supply Glut)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공급 과잉이란 쉽게 말해 만들 수 있는 양이 팔리는 양보다 훨씬 많아지는 상태입니다. 그 결과는 가격 하락이고, 가격이 내려가면 대체재는 더욱 설 자리를 잃습니다.
전기차를 타더라도 차 내장재와 타이어, 포장재, 생활용품이 이 저가 플라스틱으로 채워진다면 탄소 감축 효과는 반쪽짜리에 그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만으로 화석연료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는데 이제는 그게 얼마나 안이한 기대였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공급과잉 앞에서 재생원료는 버텨낼 수 있을까요
제가 친환경 제품을 직접 구매해보려 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가격이었습니다. 재생원료로 만든 텀블러나 용기는 일반 제품보다 1.5~2배 비쌌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도, 매번 두 배 가까운 돈을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솔직한 고백입니다.
여기서 저가 신재(Virgin Plastic), 즉 재활용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새 플라스틱 원료 가격이 더 내려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재생원료와 바이오플라스틱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고, 기업들이 친환경 원료로 전환할 유인도 그만큼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ESG 경영을 외치면서도 실제 생산 라인에서 신재를 포기하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가 플라스틱 공세가 재생원료 시장을 무조건 고사시킬 것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규제적 천장'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CBAM이란 탄소 규제가 느슨한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 EU로 수입될 때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일종의 탄소 관세라고 보면 됩니다. 신재 가격이 아무리 낮아져도 재생원료를 쓰지 않으면 수출 자체가 막히는 구조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EU 플라스틱세 도입으로 재활용되지 않은 포장재에 kg당 0.80유로의 부담금 부과 시작
- CBAM 전면 시행(2026년 예정)으로 탄소 집약적 제품의 대EU 수출 비용 증가
- 한국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탈플라스틱 종합대책(안) 발표, 2025년 상반기 최종안 확정 추진(출처: 환경부)
- 글로벌 플라스틱 협약(INC) 협상 지속,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는 방향 논의 중
규제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행정 부담을 줄이는 무난한 수준에 머물러서는 밀려오는 저가 플라스틱 공세를 막기 어렵습니다.
탄소 비용을 제품 가격에 녹여야 판이 바뀝니다
에너지 전환과 플라스틱 감축을 별개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저는 이 둘이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라고 봅니다. 석유화학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저가 원유 기반의 플라스틱이라 해도, 생산 과정의 탄소 비용을 제대로 산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탄소 가격제(Carbon Pricing)란 탄소 배출에 직접 가격을 매겨 기업이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시장 메커니즘입니다. 배출권 거래제(ETS)나 탄소세 형태로 운영되며, 국제통화기금(IMF)은 2030년까지 글로벌 탄소 가격이 톤당 75달러 이상이 되어야 기후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IMF 기후 관련 자료). 탄소 비용이 제품 원가에 제대로 반영된다면, 지금처럼 신재가 재생원료보다 압도적으로 싼 구조는 서서히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상 느끼기에, 소비자가 아무리 환경 의식을 높여도 가격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시장은 결국 싼 것을 선택합니다. 종이 빨대나 생분해성 플라스틱 같은 개인적 실천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구조적인 플라스틱 쓰나미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입니다. 탄소 비용 내재화, 재생원료 의무 사용 비율 확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강화처럼 기업의 공정 전환을 강제하는 정책이 병행될 때 비로소 판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란 제품을 만든 기업이 그 포장재나 제품의 회수·재활용 비용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를 뜻합니다.
중동발 저가 플라스틱 원료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전에, 지금이 바로 그 구조를 바꿀 마지막 창문일 수 있습니다.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느끼던 죄책감이,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나서 오히려 더 복잡한 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의 실천은 분명 의미 있지만,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단순히 '플라스틱을 많이 쓰는 습관'이 아니라 플라스틱을 계속 저렴하게 공급하려는 거대한 산업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하되,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탈플라스틱 정책이 무난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실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참고: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000150001383?dtypecode=pancode_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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